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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초 킹콩 윤일호】 흙과 함께 몸으로 겪은 일 쓰기 ①【흙과 함께 몸으로 겪은 일 쓰기 ① 첫번째 이야기】 【 텃밭에서 몸으로 겪기 】 해마다 3월이 되면 초보 농사꾼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텃밭에 뿌릴 거름도 사고, 아이들은 직접 삽과 괭이를 들고 텃밭에 가서 두둑을 만들고는 한다. 학년별로 아이들과 무엇을 얼마만큼 가꿀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에 따라 모종도 사고, 씨앗도 산다. 감자는 대체로 해마다 심는 편인데 학부모에게 씨감자를 미리 구하거나 읍내 장에 가서 사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 며칠 두었다가 4월 초쯤 심는다. 장승초가 있는 곳이 해발 350미터 정도 되는 곳이어서 밤낮의 기온 차가 제법 커서 다른 곳보다 심는 때가 조금 늦은 편이다. 감자를 심는 날 아침이면 아이들이 모여서 감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전에 감자를 심어 본 아이들도, 처음 심는 아이들도 모두 호기심이 가득하다. “감자 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준비한 음악을 맞춰 교실에서 배웠던 이원수의 씨감자 노래를 함께 부른다. 해마다 심는 감자지만 늘 새로운 마음으로 감자 이야기를 나눈다. “씨감자는 며칠 전에 눈이 고루 나눠지도록 칼로 썰었는데 그 자리에 재는 왜 묻힐까?” 몇 해 감자를 심고, 노래를 불러본 아이들은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들고 크게 대답을 한다. “감자가 아프니까요.” “재가 잘 덮어주라고요.” 미리 준비한 씨감자를 아이들과 칼로 자르고, 준비한 재를 묻혀 놓는다. 씨감자를 왜 칼로 자르는지, 재는 왜 묻히는지, 감자는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냥 심어도 되겠지만 되도록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심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 씨감자를 심는다. 텃밭에 가서 나눠 준 텃밭 두둑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 씨감자를 자른 부분이 밑으로 향하게 하고 흙을 덮는다. 처음 심는 아이들은 씨감자를 자른 부분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도 신기할 뿐이다. 이렇게 텃밭에 식물을 가꾸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재밌는 줄만 알았는데 / 강예림(장승초 6학년) 밭일은 재밌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리도 아프고 고랑도 비뚤어지면 안 되고 옥수수도 두세 개씩 심어야 되고 농사 정말 까다롭네.(2011.5.19) 【 논에서 몸으로 겪기 】 2011년부터 5월 말이면 해마다 장승 아이들과 모내기를 한다. 때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대략 4~5백 평 정도 논에 모를 심는데 작지 않은 넓이다. 무엇보다 모를 심기 전에 여러 가지 준비도 해야 한다. 모 심을 땅을 골라야 하고, 유기농 거름도 사야 하고, 모도 주문해야 한다. 주문한 거름은 미리 아이들과 뿌려야 하고, 모 심기 전에 논에 물도 대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척척 준비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일 기대하는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모를 심는 날은 아침부터 학교가 북적북적하다. 여러 해 해 본 아이들은 힘들다느니, 들어가기 싫다고도 하고, 6학년 아이들은 웃으면서 “우리는 올해가 마지막인데.” 하며 끝나는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어떻게 손모를 심는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줄을 맞춰 논으로 걷는다. 아이들이 만든 두레별로 줄을 맞춰 심는다. 낮은 학년 아이들은 모 심는 것이 서투르니 고학년 아이들이 동생들 모심는 것을 도와준다. 직사각형 모양의 논에서 가운데부터 마주 보고 두 줄로 맞춰 선 다음 심는다. 긴 장화를 신은 아이들, 맨발로 들어가는 아이들, 스타킹을 신은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들어가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낸다. 저학년 아이들은 논에 달라붙은 발을 빼어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모판에서 뺀 모는 어른들이 먼저 나누어 논바닥에 흩어 놓는다. 가운데 못줄에 맞추어 일렬로 섰다. 왼손에 모를 잡고 오른손으로 몇 개씩 떼어서 심었다. 못줄을 잡은 어른들이 장단을 맞춰서 “줄~.” 하면 아이들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 논바닥에 박힌 발을 뺀다. 발이 빠지지 않는 아이들은 “아이고~.” 하면서 고학년 도움을 받아 발을 빼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옮기면 못줄도 따라 다음 줄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서툴던 아이들도 몇 줄 심고 나면 조금씩 요령이 생겨서 제법 속도를 내어 재빨리 모를 떼어 심기도 한다. 내 앞에 놓인 못줄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 심어야 하는데 저학년이 심기에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서로 도와가면 조금씩 모를 심어 간다. 모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논에 살고 있는 생태계도 살핀다. 올챙이를 보고 괜히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오디나무 / 김태석(장승초 6학년) 모를 심는다. 앞을 보니 오디나무가 있다. 다시 모를 심고 앞을 보니 오디나무가 멀어져 있다. 계속 심고 끝나갈 무렵 또 앞을 보니 오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다.(2021.6.9.) 1학년 개구쟁이들은 조금 심다가 말고 “어휴 힘들어. 쉬고 싶어요.” 한다. 그러다가 논에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달리기 선수처럼 물을 튀기며 달리다가 논바닥 흙에서 발이 안 빠져 넘어지기도 한다.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저학년은 저학년대로 할 만큼 하고 놀고, 나름의 의미를 담는다. 흙 밟는 소리 / 송채인(장승초 6학년) 모 때우기를 한다. 진흙 밟는 소리가 “뿌지직 퐁~ 뿌지직퐁뻥.” 변기 뚫는 소리가 난다. 모 때우기보다 흙 밟는 소리 듣는 게 더 재미있다.(2012.6.12) 손모를 심고 두 주 정도가 지나면 모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잘 심어지지 않은 자리도 보인다. 이때 아이들과 함께 모 때우기를 한다. 저학년 동생들이 심은 자리는 많이 비어 있거나 모가 둥둥 떠서 빈자리가 제법 보인다. 그래도 아이들 손으로 심은 모가 자리 잡고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주로 모를 때우는 것은 6학년 아이들 몫이다. 불평도 있지만 투덜거리지 않고, 재미나게 한다. 채인이 시를 읽으면 지금 내가 논에 들어간 것만 같다. 진흙 밟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편에 계속....> 글/사진 장승초 킹콩 윤일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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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초등학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장승한마당' 성료진안군에 위치한 장승초등학교가 3일 학교 운동장과 주변에서 '장승한마당'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이 제한되었던 시기를 지나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이번 행사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장승인'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학생들과 지역사회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으로 꾸며졌다. 행사는 총 3부로 진행되었는데, 1부 '놀이마당', 2부 '어울림마당', 3부 '경기마당'으로 구성되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장승한마당에는 진안노인복지관의 어르신을 위한 부스도 운영됐다. 붓글씨 쓰기, 볏집 체험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활동들이 마련되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장승초등학교는 이번 행사를 통해 '지구를 사랑하는 장승인'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친환경 한마당'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린 학생들에게 환경의 소중함과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장승초등학교 윤일호 교사는 "장승한마당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세대 간 화합을 경험할 수 있어 매우 뜻깊었다"며 "특히 친환경 행사로 운영하여 아이들에게 환경보호의 중요성도 알릴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컸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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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사는 삶 ②]글은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글은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 ▼‘삶’과 ‘글’ 국어 시간에 ‘삶’ 이야기를 한참 하는데 6학년 아찬이라는 아이가 “쌤은 맨날 삶 이야기만 해서 지겨워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생각해 보니 정말 내가 삶 이야기를 잔소리처럼 많이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결국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삶’ 다음으로 떠오르는 낱말이 바로 ‘글’이다.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할 때 ‘삶’과 ‘글’은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을 살아야 하고, 온전히 삶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날마다 글을 쓰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이오덕 선생님은 1988년 제3회 단재상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것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르게, 건강하게 키워가는 데 있다.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에 글쓰기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모범적인 글, 완전한 글을 얻으려고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이전에 살아가는 길부터 찾게 한다. 그래서 쓸 거리를 찾고, 구상을 하고, 글을 다듬고 고치고, 감상 비평하는 가운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남을 이해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알고, 살아 있는 말을 쓰는 태도를 익히게 한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는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 글쓰기 지도뿐만 아니라 스스로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산골 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42년 동안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그 『이오덕 일기 전 5권』(2013,양철북)에는 평생 말과 행동을 같이 했던 한 인간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툼한 일기장부터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아흔여덟 권, 원고지로는 37,986장이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한 어른이 있다. 강원도 양양군 송천마을에 사시는 이옥남 할머니다. 어릴 적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는 시집살이할 적엔 꿈도 못 꾸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 보낸 뒤 도라지 캐서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공책을 샀다고 한다. 글씨를 이쁘게 쓰기 위해 날마다 글자 연습한다고 쓰기 시작한 일기를 30년 넘게 썼고, 백 세가 넘은 지금도 쓰고 있다고 한다.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151편을 묶어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2018, 양철북)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할머니의 일기를 보다 보면 정말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노가다 칸타빌레』(2021, 시대의창)라는 책을 쓴 송주홍씨는 공사장 잡부로 일하다가 어엿한 목수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글로 썼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무슨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어서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책이다. 버스운전이나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님도,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는 분도, 선생님도, 농부도 또 어떤 직업이든 어떻게 살아가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 글은 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내가 사는 지금 모습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일부러 멋지게 꾸미고,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면서 정직하게 일하고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쓰는 게 가장 귀한 글이다. 이런 글은 읽는 사람에게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직업에 귀하고 천한 것이 없듯이 글을 쓰는 건 내 삶을 더 귀하게 한다. ▼삶과 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날마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이나 글이나 진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삶으로 살면서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글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삶을 가꾼다’는 건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둘레에 아는 것은 많지만 삶으로 살아가는 건 실망스러운 어른들을 가끔 본다.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진 분인데도 왜 저럴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행동이 별로인 분들 말이다. 위선을 가득 짊어진 어른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을 보고 속으로 욕을 하거나 혀를 찬다. 한 번은 학교에 어느 유명 작가분이 오셨다. 워낙 유명한 분이어서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분이었고, 아이들이나 나나 참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다. 고맙게도 여름방학 동안 멘토, 멘티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진행했는데 그분이 한 시간 무료 강의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까지 무료로 강의 올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 부탁을 해서 자선으로 왔다며 시작부터 공치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강의 내내 내가 살던 집이 문화재가 되었다느니 내가 심은 나무가 지금 이렇게 크게 자라서 지금은 보호수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나무로 자랐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온 나무를 얼핏 보아도 그 나무는 백 년은 훨씬 넘어 보였으니 설사 그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로 들리지 않았다. 가장 어이없는 말은 자신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처럼 문화유산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 시간 내내 그런 이야기를 하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작가님, 저희는 작가님 자랑 말고 작가님의 작품세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하고 말하니 얼굴색이 확 변하며 “도대체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친 거예요.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 너 안 들으려면 밖으로 나가.”하고 학생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을 했다. 학생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고, 결국 학생은 강의 장소를 나갔다. 그 이후로 작가는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강의 내내 아이들을 나무라고 학교 교육을 나무랐다. 한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가면서도 학교 아이들이 듣는 예의도 없다며 학교와 아이들 흉을 한참 보고 갔다.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강의를 듣던 나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광경이었다. 정말 품격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행동, 자기 자랑 그리고 화만 내고 갔다. 아이들도 나도 혀를 끌끌 차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유명할 수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 저 사람의 유명세는 거짓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글과 사람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 이후로 언론이나 방송에서 그분 이야기만 나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글 작가로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한 분이어도 그 사람의 글만큼 말이나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면 금세 사람이 달리 보인다. 결국 삶과 앎이 일치해야 저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교사는 교사 삶을,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담임을 할 때면 날마다 쓴 교실 일기를 교실 뒤편에 붙여놓고는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 킹콩도 일기를 쓰나?’하고 이상하게 바라보고는 했다. 그 일기에 아이들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니 나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사는 하루 하루 교실에서 지낸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삶 이야기를 날마다 기록하면 그 기록만으로 엄청난 힘을 지닌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이 글을 쓰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2000년대 초반 국가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강제적인 일기 쓰기’가 학생들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일기 검사 관행을 개선토록 교육부에 권고했다. 물론 인권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강제로 일기를 쓰게 하는 게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 지도를 손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국어는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로 이루어져 있고, 내가 겪고 생각한 것을 말하고 글로 쓰는 과정은 국어에서 아주 귀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을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 교사도 아이들도 되도록 일기를 쓰면 좋겠다. 날마다 쓰는 일기가 힘들다면 다섯 명씩 한 모둠을 만들어 한 일기장에 주마다 한 번씩 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모둠원들이 모두 함께 일기를 읽고, 댓글도 달아주면 더욱 좋다. 다만 아이들이 밝히기 어려운 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아이들마다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나만의 공책’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갈수록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때일수록 더 글쓰기 지도를 해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결국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내 힘이 있어야 할 테니까. 새 학년 지금부터 교사는 교실 일기, 아이들이 모둠 일기를 시작해 보는 거다. 한 해 동안 꾸준히 실천하면 엄청난 기록의 힘이 쌓이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글/사진 장승초 윤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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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사는 삶> ‘미래 교육’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미래 교육’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 부끄러운 고백 정말 부끄럽게도 나를 만났던 제자 가운데 세 아이가 자살을 했다. 이 생각만 하면 끝없이 작아지기만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또 어떤 때는 제발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분은 그 많은 제자의 삶을 단지 한 해 담임을 했다는 까닭으로 그런 무한책임을 가진다면 너무 지나친 오지랖(?)이라 말씀하신다. 물론 그 말씀도 맞지만 제자의 죽음을 안 이상 내 마음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 아이는 교직 2년 차 때 만났던 아이인데 안타깝게도 대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등졌다. 그 슬픔과 안타까움에 한동안 아이들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수업하지 못했다. 두 번째 아이는 2009년에 6학년 담임을 했었는데 2020년에 창창한 삶을 뒤로하고 죽었다.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속상해서 많이 울었다. 세 번째 아이는 첫 제자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기 하사 복무를 하고, 제대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깝고, 속상하고, 슬프다. ∑ 실패 주간 우리나라 손에 꼽을만한 대학교에서 자살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럴 때면 ‘공부도 잘하고 참 똑똑한 아이가 왜 자살을 할까?’하고 의문이 든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일등만 하던 아이가 영재들만 모인 대학에 들어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축되고, 자라온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다가 낯선 실패를 겪게 되는 상황에 자존감도 낮아질 수 있겠다 싶다. 최근에 KAIST에서 2주간 ‘실패 주간’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이스트 학생 30여 명이 참여해서 실패 경험을 공유했다고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이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정작 실패에 너그럽지 못하다. 또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과 지나친 경쟁, 공부 스트레스는 더욱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행사에 참가한 카이스트 학생들은 ‘실패도 자랑이다!’라는 주제로 일상에서 있었던 실패의 순간을 잡아 사진으로 공유하기도 하고, 실패를 마주했을 때 자신이 이겨내기 위해 찾았던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다. 단지 실패를 괴로워하고, 좌절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해소하거나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법을 찾는 방식이다. 2년 전에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KAIST는 실패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연애나 연구 등 여러 가지 실패담을 나누기도 하며 망한 과제 자랑대회도 열기도 했다. ∑ 미래 교육의 허상 아이들에게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런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의 경험도 겪어보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어른 중심으로 계획된 삶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여유와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정말 바쁘다. 공부도, 학원도, 성적도, 진로도, 관계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미래 교육이라면서 ‘AI’, 에듀테크, 디지털 트렌스포매이션, 메타버스 등 교육적 개념도 확실하지 않은 외래어가 오르내린다. 정작 알맹이가 무엇인지 잡히는 것이 없다. 진정한 미래 교육이라면 ‘미래’의 가치와 방향, 철학은 무엇인지, 혁신교육과 어떻게 다른지, 아이들과 어떤 활동을 하고자 하는지 벼리가 또렷해야 한다. 더불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삶에서 좀 더 단단하게 부딪히며 지더라로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진정 필요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벌써 시·도마다 슬금슬금 아이들 성장을 살필 수 있는 성장평가나 참학력은 금세 사라지고 예전의 평가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미래교육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평가방식이 예전 방식이어서 의아하기만 하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몸으로 조금만 부대끼고 지내보아도 아이들이 현재 어떤 처지인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력이 무엇이고, 무엇을 함께 가꾸어가야 할지 금세 살필 수 있다. ∑ 정작 가르쳐야 할 힘 교과의 핵심은 마땅히 중요하고, 교과마다 가르쳐야 할 핵심 교육과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손에 꼽을만한 대학을 가지 못하는 더 많은 아이를 위해 진로를 살피는 다양한 경험과 겪기는 초·중·고를 막론하고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AI나 컴퓨터가 목적이 아니라 이런 도구나 방법을 활용하여 자신이 필요한 자료와 활동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자발성이 정작 필요하겠지. 모든 아이를 일렬로 세우고 앞서는 아이 몇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조금 벗어나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허용할 수 있는 교육은 왜 어려운 것일까. 실패했을 때 기쁜 사람은 없겠지만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고 유쾌하게 헤쳐 나가는 것도 큰 힘이다. 정작 성공했을 때의 쾌감보다 실패를 여유롭게 넘기면서 더 성장하게 되고, 배우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이 더 마음을 단단하게 하면서 회복탄력성(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도 갖추게 된다. 실패를 겁내지 않고 실천했을 때, 어려운 상황을 겪고 그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해나나근 과정의 기쁨을 느껴보았을 때 더 과감한 도전이나 성취도 이룰 수 있다. 삶을 제대로 살아본 어른이라면 마땅히 이런 것이 더 중요함을 안다. 하지만 정작 일부 학부모들은 눈앞에 보이는 아이의 성적만 바라본다. 그러니 아이들은 실패에 더 작아지고 도전하는 용기도 사라지고 만다. 더 힘든 과정도 겪어보게 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내는 힘도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에이, 현실을 전혀 모르는 붕뜬 이야기나 하시네.” “진학은 어쩌구요?”하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세상 살아보시니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하고 되묻고 싶다. 학교와 가정에서 공부 말고도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글/사진 장승초 교사 윤일호 / 전북미래교육신문은 장승초 윤일호 교사의 '교육으로 사는 삶'이라는 주제로 월1회 칼럼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