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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초 킹콩 윤일호】 흙과 함께 몸으로 겪은 일 쓰기 ①【흙과 함께 몸으로 겪은 일 쓰기 ① 첫번째 이야기】 【 텃밭에서 몸으로 겪기 】 해마다 3월이 되면 초보 농사꾼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텃밭에 뿌릴 거름도 사고, 아이들은 직접 삽과 괭이를 들고 텃밭에 가서 두둑을 만들고는 한다. 학년별로 아이들과 무엇을 얼마만큼 가꿀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에 따라 모종도 사고, 씨앗도 산다. 감자는 대체로 해마다 심는 편인데 학부모에게 씨감자를 미리 구하거나 읍내 장에 가서 사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 며칠 두었다가 4월 초쯤 심는다. 장승초가 있는 곳이 해발 350미터 정도 되는 곳이어서 밤낮의 기온 차가 제법 커서 다른 곳보다 심는 때가 조금 늦은 편이다. 감자를 심는 날 아침이면 아이들이 모여서 감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전에 감자를 심어 본 아이들도, 처음 심는 아이들도 모두 호기심이 가득하다. “감자 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준비한 음악을 맞춰 교실에서 배웠던 이원수의 씨감자 노래를 함께 부른다. 해마다 심는 감자지만 늘 새로운 마음으로 감자 이야기를 나눈다. “씨감자는 며칠 전에 눈이 고루 나눠지도록 칼로 썰었는데 그 자리에 재는 왜 묻힐까?” 몇 해 감자를 심고, 노래를 불러본 아이들은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들고 크게 대답을 한다. “감자가 아프니까요.” “재가 잘 덮어주라고요.” 미리 준비한 씨감자를 아이들과 칼로 자르고, 준비한 재를 묻혀 놓는다. 씨감자를 왜 칼로 자르는지, 재는 왜 묻히는지, 감자는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냥 심어도 되겠지만 되도록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심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 씨감자를 심는다. 텃밭에 가서 나눠 준 텃밭 두둑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 씨감자를 자른 부분이 밑으로 향하게 하고 흙을 덮는다. 처음 심는 아이들은 씨감자를 자른 부분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도 신기할 뿐이다. 이렇게 텃밭에 식물을 가꾸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재밌는 줄만 알았는데 / 강예림(장승초 6학년) 밭일은 재밌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리도 아프고 고랑도 비뚤어지면 안 되고 옥수수도 두세 개씩 심어야 되고 농사 정말 까다롭네.(2011.5.19) 【 논에서 몸으로 겪기 】 2011년부터 5월 말이면 해마다 장승 아이들과 모내기를 한다. 때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대략 4~5백 평 정도 논에 모를 심는데 작지 않은 넓이다. 무엇보다 모를 심기 전에 여러 가지 준비도 해야 한다. 모 심을 땅을 골라야 하고, 유기농 거름도 사야 하고, 모도 주문해야 한다. 주문한 거름은 미리 아이들과 뿌려야 하고, 모 심기 전에 논에 물도 대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척척 준비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일 기대하는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모를 심는 날은 아침부터 학교가 북적북적하다. 여러 해 해 본 아이들은 힘들다느니, 들어가기 싫다고도 하고, 6학년 아이들은 웃으면서 “우리는 올해가 마지막인데.” 하며 끝나는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어떻게 손모를 심는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줄을 맞춰 논으로 걷는다. 아이들이 만든 두레별로 줄을 맞춰 심는다. 낮은 학년 아이들은 모 심는 것이 서투르니 고학년 아이들이 동생들 모심는 것을 도와준다. 직사각형 모양의 논에서 가운데부터 마주 보고 두 줄로 맞춰 선 다음 심는다. 긴 장화를 신은 아이들, 맨발로 들어가는 아이들, 스타킹을 신은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들어가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낸다. 저학년 아이들은 논에 달라붙은 발을 빼어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모판에서 뺀 모는 어른들이 먼저 나누어 논바닥에 흩어 놓는다. 가운데 못줄에 맞추어 일렬로 섰다. 왼손에 모를 잡고 오른손으로 몇 개씩 떼어서 심었다. 못줄을 잡은 어른들이 장단을 맞춰서 “줄~.” 하면 아이들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 논바닥에 박힌 발을 뺀다. 발이 빠지지 않는 아이들은 “아이고~.” 하면서 고학년 도움을 받아 발을 빼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옮기면 못줄도 따라 다음 줄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서툴던 아이들도 몇 줄 심고 나면 조금씩 요령이 생겨서 제법 속도를 내어 재빨리 모를 떼어 심기도 한다. 내 앞에 놓인 못줄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 심어야 하는데 저학년이 심기에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서로 도와가면 조금씩 모를 심어 간다. 모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논에 살고 있는 생태계도 살핀다. 올챙이를 보고 괜히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오디나무 / 김태석(장승초 6학년) 모를 심는다. 앞을 보니 오디나무가 있다. 다시 모를 심고 앞을 보니 오디나무가 멀어져 있다. 계속 심고 끝나갈 무렵 또 앞을 보니 오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다.(2021.6.9.) 1학년 개구쟁이들은 조금 심다가 말고 “어휴 힘들어. 쉬고 싶어요.” 한다. 그러다가 논에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달리기 선수처럼 물을 튀기며 달리다가 논바닥 흙에서 발이 안 빠져 넘어지기도 한다.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저학년은 저학년대로 할 만큼 하고 놀고, 나름의 의미를 담는다. 흙 밟는 소리 / 송채인(장승초 6학년) 모 때우기를 한다. 진흙 밟는 소리가 “뿌지직 퐁~ 뿌지직퐁뻥.” 변기 뚫는 소리가 난다. 모 때우기보다 흙 밟는 소리 듣는 게 더 재미있다.(2012.6.12) 손모를 심고 두 주 정도가 지나면 모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잘 심어지지 않은 자리도 보인다. 이때 아이들과 함께 모 때우기를 한다. 저학년 동생들이 심은 자리는 많이 비어 있거나 모가 둥둥 떠서 빈자리가 제법 보인다. 그래도 아이들 손으로 심은 모가 자리 잡고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주로 모를 때우는 것은 6학년 아이들 몫이다. 불평도 있지만 투덜거리지 않고, 재미나게 한다. 채인이 시를 읽으면 지금 내가 논에 들어간 것만 같다. 진흙 밟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편에 계속....> 글/사진 장승초 킹콩 윤일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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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초등교사협회, 음식배달전문 앱 스승의 날 이벤트 문구에 우려 표명대한초등교사협회(회장 김학희)는 최근 한 음식배달전문 앱이 진행한 스승의 날 이벤트와 관련하여 우려의 뜻을 전했다. 김 회장은 "해당 앱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감사하지만, 이번 스승의 날 이벤트에 사용된 문구들이 교사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쌤 피자 사주세요!"와 "스쿨푸드 사주면 스승이라 부를게"라는 문구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문제가 된 문구> 김 회장은 해당 문구들이 "스승이라는 직업과 그 명예를 경솔하게 다루며, 상업적 이익을 위해 교사의 사회적 지위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승의 날은 교육자로서 교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날인데, 이러한 문구들은 교사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기보다는 부적절한 요구를 하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농담처럼 풍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한초등교사협회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김 회장은 "해당 앱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기업으로서, 사용하는 문구 하나하나가 갖는 영향력을 심사숙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협회는 해당 앱 측에 문제가 된 이벤트 문구의 수정 또는 철회를 고려해 줄 것과 더불어 향후 이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정중히 요구했다. 김 회장은 "해당 앱이 앞으로도 더욱 책임감 있는 마케팅 활동을 통해 모든 이용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해당 음식배달전문 앱 측은 공식적인 해명은 없으나, 대한초등교사협회의 우려의 뜻을 전달받은 후 문제되는 문구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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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초 백희철 교장, 스승의 날 맞아 잊지 못할 은사님께 감사 전해스승의 날을 맞아 삼례초등학교 백희철 교장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안종돈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전북미래교육신문이 진행한 '스승의 날 기념, 잊지 못할 은사님 찾기'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백 교장은 안 선생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백 교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혼한 부모님 탓에 어려운 환경에서 지냈지만, 겉으로는 우수한 학업성적과 밝은 성격으로 학급반장을 맡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면에는 친척집을 전전하거나 온기 없는 집에서 지내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종돈 선생님은 백 교장을 혼내는 대신 신혼집으로 불러 따뜻한 밥을 챙겨주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또한 당시 귀했던 21단 자전거를 선물로 주시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다고 한다. 안 선생님의 도움으로 백 교장은 문제 있는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받아 교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현재는 만 6년 경력의 교장으로 재직 중인 백 교장은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고마우신 안종돈 선생님, 퇴직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시지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은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안종돈 선생님은 백 교장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냈다. "백희철 군은 학창시절 내내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학생이었죠. 특히 리더십이 뛰어나 학급 반장을 맡아 학급 운영을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공부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백희철 군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씨를 가진 학생이었죠. 지금은 교장 선생님이 되어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저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보듬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며 제자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안종돈 선생님은 "교직에 몸담은 지 오래되어 교권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백희철 교장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우리 교육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라며, 전북 교육 발전을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해 주시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백희철 교장은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크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교육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은사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는 것이 스승님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교육자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안종돈 은사님의 아내분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꽃바구니를 전달하고 있다> 이번 '스승의 날 기념, 잊지 못할 은사님 찾기' 이벤트를 통해 교사와 제자 간의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백희철 교장의 사연처럼 많은 스승님들이 제자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교육계에 이런 훌륭한 스승님들이 많이 배출되어, 학생들이 바른 인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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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초 이종훈 교사】 교사로 살아가는 삶 ⓵‘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초등학교를 보게 하라!’ 줄어드는 학령인구 문제, 무너진 교권 등 모두가 교육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교육을 지키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교사로서 필자의 보루이자, 꼭 지켜내고 싶은 소명이다. ▶ "그냥 하고 싶은거 해." 초등교사는 필자의 두 번째 직업이다. 대부분이 그렇듯 어린 시절엔, 꿈을 물어보면 별생각 없이 과학자가 될 거라고 말했고, 중고등을 지나면서도 별다른 꿈을 꾸어볼 기회나 펼쳐볼 겨를도 없이, 나의 꿈이 목표가 아닌, 대학 입학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정신없이 달려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재수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볼 용기는 차마 낼 수 없었고, 그렇게 겨우겨우 졸업하고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도 태어나고.... 삶의 목적이나 의미 보다는 그냥 살아야 되니까 살아가는 듯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필자의 삶에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가 사무실을 강남에서 분당으로 옮기면서 안 그래도 집(인천)에서 멀었는데 더 멀어지게 되었고, 근심에 차 있던 중에 아내의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한 마디에 용기를 내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이 서른에 다시 교사의 꿈을 꾸기 시작해 띠동갑 동생들과 함께 수능 시험을 보고 서른다섯에 늦깎이 초등교사가 되었다. ▶ 교직에 첫발을 내디고.... 임용이 되고 첫 발령을 받아 5년 간 근무했던 학교는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시골학교였다. 1학년 담임이었는데 첫 날 9명의 아이들과 레슬링한 기억밖에 없다. 비장한 각오로 4년 동안 교원대 초등교육과에서 배운 모든 걸 쏟아 내려고 뭔가 준비한 걸 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그냥 놀아요.” “레슬링해요.” 하며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바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사실 초등교사인 아내가 예전에 퇴근하고 돌아와 다리가 아프다고 할 때 6시 출근하고 11시 퇴근하던 나의 입장에서는 8시 반 출근 4시 반 퇴근인 교사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교실 출근 첫 날에 바로 반성과 회개가 되어서 그리 했던 것이다. 교사의 삶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4년 간 배운 얄팍한 이론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마치 이론만 아는 외과 의사가 실습 없이 바로 수술대 위에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것도 홀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계속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음악을 전공한 남자 신규교사가 온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있던 처녀 여선생님들에게 애 둘 딸린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엄청난 배신감이었던지 아니면 내 자격지심인지 선배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게 쉽지 않았고,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교직 문화 자체가 일반 직장과는 다르게 수평적인 문화이다 보니 상사 부하 직원 혹은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어 아무 것도 모르는 신규 교사 임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연차가 쌓여가면서 이 부분이 안타까워 반대로 저경력 선생님들께 도움을 주고 싶어도 이러한 벽을 깨뜨리고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대가 바뀌어 가면서,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직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부분이 더욱 심해져 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병원에도 전문의, 전공의, 인턴 제도가 있듯, 그리고 전공의가 수술대에서 메스를 잡기 까지 많은 실습과 훈련, 수많은 선배들의 도움을 거치는 것처럼 이 나라의 생명과 같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도 담임으로 20여명 남짓한 생명들의 일 년을 책임지게 하려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서이초 선생님의 경우도 이러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교사가 된 것 말고도 필자는 감사하게도 교사로서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첫 학교에서는 2년차에 바로 교무가 되어서 3년간 교무를 했고(그것도 교감이 없는), 음악을 좋아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내가 좋아하는 락밴드를 관내 처음으로 만들어 지도할 수 있었고, 지금 네 번째 학교인데 이후에 학교를 옮길 때마다 신기하게 밴드가 있거나 없으면 만들게 되거나 해서 계속 그 경력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학교는 어쩌다보니 중국 광저우에 있는 학교에서 3년 간 근무를 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은 교사로서 큰 자산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 '종스승' : 나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관계 필자는 ‘스승’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광저우 학교 근무 당시 교장이셨던 필자의 멘토 장진갑(전 중앙기독초등학교 교감)선생님, 갑(甲)스승님의 ‘스승론’에 영향을 받았는데, ‘스승’이라는 말은 단순히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제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인도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이 의미가 교사로서의 삶을 고민하던 나에게 큰 무게감으로 다가와 꽂혔고, 교사로서의 나의 인생의 A.D 와 B.C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사로서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그 뒤로 만나는 제자들과 학부모님들께는 첫 날 이 ‘스승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를 ‘종스승’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비록 내 모습이 이 ‘스승’이라는 단어에 아직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불러 주시면 그렇게 되려고 계속 노력할 거라고 진심으로 말하면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제자들도 그렇게 부르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우리들은 종스승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교육의 컨텐츠와 기술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솔직히 그냥 교사의 입장에서 가르치고, 한 차시 한 차시 때우기에 급급한 나무를 보는 교육을 했다면, 이제는 제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배움에 이르게 하고 나아가 그들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숲을 보는 교육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과학 전담을 하고 있는데, 이과를 나오고 생물자원공학을 전공하면서 과학을 수년 간 배우면서 한 번도 과학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초등 3학년이 되어서 처음 과학을 접하는 나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과학이라는 과목을 어렵고 따분한 과목이 아닌 쉽고 재미있게 느끼게 해줄까를 고민하다가 마실 가듯이 즐겁게 배우는 과학, 메타버스로 재미있게 접하는 과학을 접목해 보았다. 그래서 우리 과학실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마실가요 메타버스 타고 양지 과학 교실로!’ 여기서 ‘마’는 마술, ‘실’은 실험, ‘가’는 가르침(원리), ‘요’는 요리로 배우는 과학을 말한다. 그리고 마실가요를 통해 배운 내용을 띵커벨이나 ZEP에 접속하여 퀴즈를 풀고 방탈출 게임을 하며 정리하고 활동한다. 얼마 전 친구사랑주간에 과학실에서는 라면 속의 과학 원리를 배우고 맛있게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한 선생님께서 학급의 학생이 과학수업 이야기를 일기로 썼다며 그 내용을 귓속말로 전달해 주셨다. “ ‘안 그래도 재미있는 과학 시간인데 라면 파티라니~!’라고 썼더라고요.” 그 외에도 “스승님! 과학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의 최애 과목이 과학으로 바뀌었어요.”라고 하는 제자들, 졸업 후 찾아와서는 “스승님과 함께 했던 일 년이 초등학교 시절 중 제일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아요.” “5학년 때 스승님 덕에 큰 성장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인생이 참 아름다워 진 것 같아요.” 라고 말해주곤 한다. 이런 제자들의 말들을 들을 때마다 보람되고 교사로서 자존감과 에너지가 확 올라가게 됨을 느낀다. ▶20평 남짓의 교실, 20명 남짓의 아이들, 20년 후 대한민국 미래 교사가 되기 전 많이 망설였던 점 중 하나가 ‘나는 교사와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고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극 ‘I’의 수줍은 성격의 나는 ‘교사는 친절하고 상냥해야지.’란 생각과는 꽤 멀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기질은 교사가 되어서 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는 교사로서 단점으로 느껴진다. 아마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 중 나와 같은 성격과 기질을 가지신 분도 계실 것이며 이외에도 많은 내적, 외적 어려움과 장애물에 부딪혀 교사로서의 삶을 고민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물론 다양한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와 장애물을 극복하며 멋진 교사의 삶을 살고 계신 스승님들도 계시겠지만, 지금도 출근길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가며 교단을 지켜내고 계시는 소중한 선생님도 계실 것이다. 그런 선생님께 부족한 자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힘들게 지키고 계시는 20평 남짓의 교실이,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20년 후의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생님 옆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글/사진 양지초 이종훈 교사】 서울대학교 졸업 한국교원대학교 졸업 현) 양지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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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밖 교사 - 임채홍 퇴직교장】 42년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전하는 메시지【 42년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전하는 메시지 】 정년퇴직한 지가 어느새 훌쩍 10년이 지나가 버렸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기보다는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 같아 퇴직하면서 조그만 과수밭을 일구며 지내고 있다. 과일이 귀해 잘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부터 늘 갈망했던 일이라 지금의 일에 만족하며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새만금 방조제를 거처 부안, 고창 쪽으로 달리다가 우연히 농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0여 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즐겁게 체육활동을 하는 것을 보니 지난날의 풍경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처음 발령을 받아 교직 생활에 발을 디딘 곳이 고창 시골 학교였다. 학생 수도 한 반에 50명 정도 되었는데 요즘엔 한 반에 10명도 채 안 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1960~70년대 학교를 다니던 때, 졸업할 무렵이 되면 선생님께서는 늘 학생들에게 자기 진로에 대해 교단에 올라와서 발표하는 시간을 주셨다. 우리 반 학생들은 한 명 한 명씩 나와 정치가, 군인, 사업가. 공무원, 판·검사, 의사 등 자신만의 멋진 꿈과 미래에 대해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꼭 아이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먹고살기도 어렵고, 또한 대학 가기도 힘든 때였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마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내 삶에 다가온 것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막한 일상 속에서 가야 할 길을 찾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군산교육대학교에 초등교원 양성소 과정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단기 코스를 받는 과정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많은 것을 배워 수료하고 그토록 소중하게 꿈꿔왔던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교직 생활 42년 동안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앞장서서 연수활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또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 및 농촌개발 전공과 군산대학교에서 생물교육전공 석사과정도 공부하였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배워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교단생활을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학생들의 인성교육, 체육활동, 과학교육, 연구학교운영 등을 열심히 했고 수학경시대회, 자연관찰 탐구대회 등에 참여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학생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교장이 되어 학생 때 나의 모습을 되새기며 교육과정 운영에 ‘나의 꿈 발표시간’을 전교생이 발표할 수 있도록 1년 동안 계획을 세우고 운영하였다. 미래 지향적인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자존감을 갖고 꿈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우리 학생들이야말로 보배 중의 보배다. 그런데 최근에 다양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학생 수의 감소, 학교 통폐합, 출산율 최저, 결혼 회피, 일부 학부모와의 갈등, 학생들의 인성교육 문제, 서로 간의 책임 회피 등으로 학교 교육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를 비롯하여 사회나 가정에서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재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또한, 출산 장려 정책을 잘 세워 출산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만 한다. 나아가 학교의 짜임새 있는 교육과정의 운영과 교직원들의 올바른 교육관, 학부모와의 소통, 지역사회와의 연계 지도가 이루어져 학교 교육에 모두가 관심을 갖고 노력할 때에 우수한 인재가 더욱 많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정규 교육과정을 비롯하여 방과후학교 및 늘봄학교 등을 짜임새 있게 운영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취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시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학생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올바른 품성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자원이 부족하여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여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재 양성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교육은 이 나라 부흥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삼성 고(故) 이건희 회장님의 말씀 중에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 뛰어난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미래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훌륭한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위치는 그만큼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삶의 꽃이 피어나는 데 있어서 토양, 물, 햇빛과 같은 공간이다. 이 소중한 공간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꿈은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물론 국가와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더욱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사진 前 교장 임채홍 임채홍 교장은 1951년 군산 출생으로 고창 학천초를 시작으로 13개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했으며 고창 심원초 교장으로 2013년 정년퇴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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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또 다른 교육] 풀뿌리 마을학교 - 미룡 꿈 공작소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을 경험시켜주고 싶어요[지역의 또 다른 교육] 풀뿌리 마을학교 - 미룡 꿈 공작소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을 경험시켜주고 싶어요 ▼ 학생들의 끼와 재능을 펼칠 자유로운 활동공간이 절실... 나는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을 자녀로 둔 평범한 학부모다. 큰 아이 때만 하더라도 학교 교내에서 이뤄지는 운동회와 학예발표회, 음악회와 독서바자회 등 다양한 행사들로 아이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맞벌이 증가와 교사 업무부담 그리고 아이들의 바쁜 사교육 등으로 모든 행사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없어지기도 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방과 후 수업과 돌봄 학교 시행 그리고 이를 통합한 늘봄학교가 시범 운영 중에 있지만 학생들이 끼와 재능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활동영역과 공간 그리고 인력지원을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들의 여가활동 공간은 카페나 코인노래방, PC방과 볼링장등으로 전락하며 성인시설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사각지대로 몰리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꿈과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 공간 프로젝트가 절실히 필요하다. ▼ 미룡 꿈 공작소는 학교 밖 공간을 활용한 마을 공동체 사업의 뿌리 필자는 최근 군산 교육지원청 교육협력지구인 풀뿌리 마을학교를 2년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각 마을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학교 밖 공간을 활용하여 학교 관계자와 마을 주민과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아이들이 즐겁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하는 마을 공동체 사업이다. 마을 특성에 따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요조사를 통해 관심분야를 선정하고 현재 미룡 마을인 경우 방과 후에 아파트 단지 경로당을 공간으로 지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곳 마을학교 구성원들은 서로 의견을 수렴하여 〈미룡 꿈 공작소〉라는 별도의 고유 명칭을 명명하기도 했다. 경로당에서는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활동에 참여하고 전문성을 갖춘 마을 강사와 학부모의 자발적인 돌봄 봉사가 함께 어우러지며 아이들의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미룡 꿈 공작소에서는 연간 수업계획으로 발명, 마술, 과학실험, 쿠킹, 업싸이클링, 미니 운동회, 장기자랑, 원어민 수업, 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활동영역을 아이들에게 제공하였다. 물론 다른 마을학교 프로그램은 고장 역사탐방, 생태환경, 뮤지컬 공연, 진로탐색, 마을축제 등 더욱 다양하다. 이로써 아이들은 창작, 흥미, 양보, 협동, 질서, 성취를 배우게 되고 이에 참여하는 어른들은 교육, 봉사, 참여, 인솔, 관리, 홍보를 함으로써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 지역의 또 다른 교육기회의 장 풀뿌리 마을학교 사업의 주요 목적은 학교와 마을이 함께 협력하여 아이들의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제공하여 의사소통과 역량강화, 협업과 협동능력,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계발 그리고 심미적 감성을 함양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군산에서 마을학교는 7개 초등학교에서 연계하여 지역의 특성에 맞게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민간단체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교육공동체 실현을 위해 군산 교육청에서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마을 강사 역량강화 연수는 물론 워크샵과 컨설팅, 자문회의에도 마을학교 소속 위원들은 적극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활동을 제공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풀뿌리 마을학교가 더 성장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고등학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연령층을 확대하고 다양한 컨텐츠와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축하여 청소년들의 타고난 기질과 재능을 찾아 진로코칭과 직업과도 연계할 수 있는 통합적 교육공간의 플랫폼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 풀뿌리마을학교 - 이은미 이은미 : 용문 풀뿌리 마을학교 대표 역임 (2022년~2023년) 청소년자치연구소 청소년 진로지원 위원장 역임 (2018년~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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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전교조전북지부-전북교육청, 단체협약, '진지한 논의와 상호협력을 통해 극복해야...'전교조 전북지부와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간의 단체협약 교섭이 본격적인 시작도 전에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번 단체교섭은 양측에서 제시한 요구 사항의 규모와 내용 때문에 교육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의 요구, 전북교육청의 단체협약에 대한 입장,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자세히 조명해보자고 한다. ▼ 전교조 전북지부의 요구사항 전교조 전북지부는 단체교섭의 실질적 진행을 위해 몇 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들의 요구는 주로 교육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권익 보호와 근무 조건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교사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 환경 조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개선안을 교섭 테이블에 올렸으나 이러한 요구가 전북교육청의 접근 방식과 상충되며, 교섭 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 전북교육청의 전교조 전북지부와의 단체협약에 대한 입장 전북교육청은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요구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140여 개 조항에 대한 수정 및 삭제를 요구하고 있어 전교조 전북지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교섭 절차에 관한 예비교섭은 합의 도출에 실패하며 본 교섭에 진입조차 못하고 있는게 현 상황이다. 실무교섭 대표의 지위나 쟁점 안건 처리 과정에 대한 교육청의 제안(140여개 조항에 대한 수정 및 삭제)은 노동조합의 기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교조는 이러한 교육청의 태도를 단체교섭의 위상을 저하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하며, 이에 강력한 반발하고 있다. ▼ 2024.3.20. 전교조 전북지부 단체협약에 관한 성명서 발표 전교조 전북지부는 교섭 과정에서의 난제를 해결하고 교육 현장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기 위한 몇 가지 대책을 모색하고자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교섭의 재개 및 원활한 진행을 위해 중재 기관의 개입을 요구할 수 있으며, 더 넓은 교육계의 지지와 공감을 얻기 위한 홍보 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교육청과의 협상에서 교사들의 권익과 근무 환경 개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에 따라, 보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안건들을 제안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북교육청과의 교섭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려고 한다. 동시에, 전교조 전북지부는 공공성과 교육의 질을 우선시하는 단체협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공동체 내외부에 이러한 가치를 전파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전교조 전북지부와 전북교육청 사이의 단체협약 교섭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양측 간의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전교조는 도교육청에 교섭 과정에서의 성실한 태도와 개방적인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교육청이 단체교섭 요구안을 아직 제출하지 않은 점에 대해, 전교조는 이를 교섭 진행에 대한 도교육청의 불성실한 태도로 간주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교섭 과정에서 전교조 전북지부와 전북교육청은 합리적이고 상호 존중의 기반 위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두 기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북 지역 교육의 질과 교사 및 학생들의 권익 보호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양측은 모두 교육공동체의 기대와 미래를 염두에 두고 협상 테이블에 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전교조 전북지부와 전북교육청 간의 단체협약 교섭은 양측의 진지한 논의와 상호 협력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의 성실한 교섭 참여와 전교조의 합리적인 요구 제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전북 지역 교육계의 발전과 교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이번 단체협약 교섭에 교육공동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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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수험생, 학부모에게 드리는 글] 매화꽃처럼 빛나는 시작을 위해..『매화꽃처럼 빛나는 시작을 위해』 고경수 올봄은 유달리 여느 해와 다르게 봄꽃이 일찍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러나 입시를 앞둔 3학년 학생, 학부모에게 이른 개화는 마냥 즐겁지 않다. 꽃의 향기에 취해 거리를 걷는 것조차 대학에 대한 입시 부담과 걱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문턱은 학생을 넘어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교육의 성과물이 대입 입시로 판단된다는 사회적 관행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3월이 오면 인문계고등학교는 개학과 동시에 바로 대학 입시 상담이 시작된다. 상담의 핵심적 내용은 학생 개개인의 내신등급을 확인하고 가야 할 진로의 방향을 조사해 그에 적합한 대학과 학과를 추천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들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유형은 본인이 가야 할 진로의 방향을 알고 그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조사해서 얼마만큼의 노력이 더 필요한지를 묻는 학생이다. 이 학생에 대한 상담은 진로의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점수와 학과를 분석해 가며 비교적 신속하고 유쾌하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입시 준비 기간 동안 비교적 순탄하게 자신의 능력에 맞춰 학습의 방향을 세우고 실천해 간다. 두 번째 유형은 본인이 가야 할 진로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성적에 맞는 대학과 학과가 무엇인지를 묻는 학생이다. 이 학생에 대한 상담은 상담을 할수록 나조차 길을 잃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이 이러한 유형에 처해 있다. 이 공간을 들어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은 우리 교육이 처해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진로의 방향은 어느 정도 확실하게 정해져 있으나 1, 2학년의 성적이 좋지 않아 그 꿈을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처해 있는 학생이다. 그래도 이러한 학생에 대한 상담은 본인의 진로를 알지 못하는 두 번째 유형의 상담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활기차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성적 향상을 위한 응원과 학생의 유형에 맞는 구체적인 학습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3월은 진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가야 할 목적지를 알고 노를 젓는 학생과 아무런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에 표류하고 있는 학생 간의 차이는 출발점에서부터 큰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3월부터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는 연말까지의 시간은 꽤 긴 레이스다. 이 레이스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3월에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달려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설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선선한 봄기운이 가시고 조금씩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4월이 되면 학생들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앞에 무기력해지거나 잠에 취해 지쳐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세웠던 다짐과 계획도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마음을 굳게 다잡기 위해서는 3월의 출발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 입시는 타인이 아닌 자신과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이 비록 실패로 끝날지라도 이 소중한 시간은 자신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하는 이 순간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말했던,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자신의 내면 노트에 깊게 새겨보자.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멋진 항해를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그 꿈을 향한 작은 등대가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사진 '나를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 작가 고경수 *고3 학생, 학부모의 길고 긴 수험생활을 '전북미래교육신문'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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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1기 윤용빈의원, '전북학생의회, '교육가족 여러분과 도민여러분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은 2023년 교육감 공약사항으로 전북학생의회를 조직운영하고 있다. 2023년 첫 출발한 2기 학생의회 활동을 마치고 15일 제2기 의장이 선출된다. 전북학생의회 설립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안한 1기 윤용빈의원을 만나보았다. ▼소개부탁한다. 안녕하십니까. 전주효림초등학교, 전주풍남중학교, 동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 해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한 전)제1기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의회 의원 윤용빈입니다. ▼ 전북학생의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의회는 19만 전북학생들을 대표하여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학생자치기구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은「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학생의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에 의하여 보장받고 있습니다. ▼ 자신이 전북학생의회를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저는‘전북학생의회 설립’을 제안하였고 이후 제19대 전라북도교육감직인수위원회 학생정책자문위원 으로서 학생의회 준비단에도 함께하여 조례제정 등 설립을 위한 활동에 함께하였습니다. 학생의회가 설립된 이후 전북학생의회의 안정적인 운영과 발전을 위하여 공개모집으로 신청하고 선발되어 1년간 활동하였습니다. ▼작년 전북학생의회가 역점으로 둔 사업은 무엇인가? 지난해 전북학생의회에서는 40여건의 정책들이 제안되었고 8가지 정책들이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등.하교 교통비지원, 교내 가로등 개선.설치 등의 안건들이 있습니다. 본회의를 통과한 8가지 정책들의 경우에는 모두 2024년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예산안에 반영되었습니다. 이 8가지 정책들중에서도 대표적으로는 제가 대표발의한 ‘전북특별자치도 고등학교1학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원 보장’안이 있습니다. 이 정책은 여러 언론에서도 다룰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조차 없이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만으로 전국단위 모의고사에 응시할권리가 사라지고 해당 내용은 노동환경과 임금을 주로 다루는 단체협약안에 있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반영하여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 의원 활동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저는 1년간 전북학생의회의 학생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며 서거석 전북특별자치도교육감님을 비롯한 국주영은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장님,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님, 강은희 대구광역시교육감님들과 같은 분들을 만나 학생의회에 대해서 알리고 해당 지역의 우수한 정책들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23년 지난해 서이초 선생님의 비보로 교육계가 슬픔에 잠겨있을 당시의 8월 19일 공교육 정상화 집회에 참석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로 선생님들과 매주 거리로 나갔지만 이날은 단상에 올라 발언까지 했던 것이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수만명의 선생님들 앞에서 발언하는것이라 너무나 두렵고 떨렸지만 선생님들의 열렬한 환호와 지지덕분에 해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앞으로 전북학생의회가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겠는가?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의회는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체계적인 학생자치기구입니다. 지난해는 초대 이기에 전례가 없어 활동하는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통과 노하우를 쌓아간다면 교육현장의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잘 반영되어 학생중심 미래교육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학생들 개개인또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진로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아직 구체적인 진로계획은 없습니다만 사회와 교육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분야에 대해 더욱 깊이 배우고 탐구하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라북도민과 학생, 교사분에게 하고 싶은말은? 저는 전북교육의 중심에서 배우고 자라왔습니다. 전북학생의회는 저의 학창시절 가장 인상깊고 개인적으로 활동을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였습니다. 이 전북학생의회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교육가족 여러분과 도민여러분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1년간의 잊지못할 학생의회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서거석 전북특별자치도교육감님, 익산교육지원청 정성환 교육장님, 정읍교육지원청 정미정 교육지원과장님, 민주시민교육과 김종인 장학관님, 안향 장학사님, 김종소 장학사님. 신동혁 주무관님, 김민정 주무관님, 전헤진 선생님을 비롯한 엄청난 지지와 응원을 해주신 민주시민교육과 선생님들과 도교육청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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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사는 삶 ②]글은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글은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 ▼‘삶’과 ‘글’ 국어 시간에 ‘삶’ 이야기를 한참 하는데 6학년 아찬이라는 아이가 “쌤은 맨날 삶 이야기만 해서 지겨워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생각해 보니 정말 내가 삶 이야기를 잔소리처럼 많이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결국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삶’ 다음으로 떠오르는 낱말이 바로 ‘글’이다.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할 때 ‘삶’과 ‘글’은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을 살아야 하고, 온전히 삶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날마다 글을 쓰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이오덕 선생님은 1988년 제3회 단재상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것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르게, 건강하게 키워가는 데 있다.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에 글쓰기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모범적인 글, 완전한 글을 얻으려고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이전에 살아가는 길부터 찾게 한다. 그래서 쓸 거리를 찾고, 구상을 하고, 글을 다듬고 고치고, 감상 비평하는 가운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남을 이해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알고, 살아 있는 말을 쓰는 태도를 익히게 한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는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 글쓰기 지도뿐만 아니라 스스로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산골 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42년 동안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그 『이오덕 일기 전 5권』(2013,양철북)에는 평생 말과 행동을 같이 했던 한 인간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툼한 일기장부터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아흔여덟 권, 원고지로는 37,986장이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한 어른이 있다. 강원도 양양군 송천마을에 사시는 이옥남 할머니다. 어릴 적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는 시집살이할 적엔 꿈도 못 꾸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 보낸 뒤 도라지 캐서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공책을 샀다고 한다. 글씨를 이쁘게 쓰기 위해 날마다 글자 연습한다고 쓰기 시작한 일기를 30년 넘게 썼고, 백 세가 넘은 지금도 쓰고 있다고 한다.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151편을 묶어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2018, 양철북)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할머니의 일기를 보다 보면 정말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노가다 칸타빌레』(2021, 시대의창)라는 책을 쓴 송주홍씨는 공사장 잡부로 일하다가 어엿한 목수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글로 썼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무슨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어서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책이다. 버스운전이나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님도,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는 분도, 선생님도, 농부도 또 어떤 직업이든 어떻게 살아가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 글은 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내가 사는 지금 모습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일부러 멋지게 꾸미고,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면서 정직하게 일하고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쓰는 게 가장 귀한 글이다. 이런 글은 읽는 사람에게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직업에 귀하고 천한 것이 없듯이 글을 쓰는 건 내 삶을 더 귀하게 한다. ▼삶과 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날마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이나 글이나 진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삶으로 살면서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글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삶을 가꾼다’는 건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둘레에 아는 것은 많지만 삶으로 살아가는 건 실망스러운 어른들을 가끔 본다.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진 분인데도 왜 저럴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행동이 별로인 분들 말이다. 위선을 가득 짊어진 어른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을 보고 속으로 욕을 하거나 혀를 찬다. 한 번은 학교에 어느 유명 작가분이 오셨다. 워낙 유명한 분이어서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분이었고, 아이들이나 나나 참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다. 고맙게도 여름방학 동안 멘토, 멘티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진행했는데 그분이 한 시간 무료 강의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까지 무료로 강의 올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 부탁을 해서 자선으로 왔다며 시작부터 공치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강의 내내 내가 살던 집이 문화재가 되었다느니 내가 심은 나무가 지금 이렇게 크게 자라서 지금은 보호수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나무로 자랐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온 나무를 얼핏 보아도 그 나무는 백 년은 훨씬 넘어 보였으니 설사 그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로 들리지 않았다. 가장 어이없는 말은 자신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처럼 문화유산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 시간 내내 그런 이야기를 하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작가님, 저희는 작가님 자랑 말고 작가님의 작품세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하고 말하니 얼굴색이 확 변하며 “도대체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친 거예요.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 너 안 들으려면 밖으로 나가.”하고 학생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을 했다. 학생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고, 결국 학생은 강의 장소를 나갔다. 그 이후로 작가는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강의 내내 아이들을 나무라고 학교 교육을 나무랐다. 한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가면서도 학교 아이들이 듣는 예의도 없다며 학교와 아이들 흉을 한참 보고 갔다.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강의를 듣던 나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광경이었다. 정말 품격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행동, 자기 자랑 그리고 화만 내고 갔다. 아이들도 나도 혀를 끌끌 차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유명할 수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 저 사람의 유명세는 거짓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글과 사람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 이후로 언론이나 방송에서 그분 이야기만 나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글 작가로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한 분이어도 그 사람의 글만큼 말이나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면 금세 사람이 달리 보인다. 결국 삶과 앎이 일치해야 저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교사는 교사 삶을,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담임을 할 때면 날마다 쓴 교실 일기를 교실 뒤편에 붙여놓고는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 킹콩도 일기를 쓰나?’하고 이상하게 바라보고는 했다. 그 일기에 아이들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니 나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사는 하루 하루 교실에서 지낸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삶 이야기를 날마다 기록하면 그 기록만으로 엄청난 힘을 지닌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이 글을 쓰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2000년대 초반 국가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강제적인 일기 쓰기’가 학생들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일기 검사 관행을 개선토록 교육부에 권고했다. 물론 인권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강제로 일기를 쓰게 하는 게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 지도를 손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국어는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로 이루어져 있고, 내가 겪고 생각한 것을 말하고 글로 쓰는 과정은 국어에서 아주 귀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을 가장 좋은 소통 도구이기에 교사도 아이들도 되도록 일기를 쓰면 좋겠다. 날마다 쓰는 일기가 힘들다면 다섯 명씩 한 모둠을 만들어 한 일기장에 주마다 한 번씩 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모둠원들이 모두 함께 일기를 읽고, 댓글도 달아주면 더욱 좋다. 다만 아이들이 밝히기 어려운 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아이들마다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도록 ‘나만의 공책’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갈수록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때일수록 더 글쓰기 지도를 해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결국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내 힘이 있어야 할 테니까. 새 학년 지금부터 교사는 교실 일기, 아이들이 모둠 일기를 시작해 보는 거다. 한 해 동안 꾸준히 실천하면 엄청난 기록의 힘이 쌓이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글/사진 장승초 윤일호